유니언타운
우리의 소소한 대화들 그리고 업플로호스텔
2022. 01. 14(금요일)
'정말요? 한번도 안 가봤다구요? 서은씨는 여행 다니려고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네, 관광 전공했는데. 정말로 해외여행 한 번도 못 가봤어요.'
'의외네요! 뭔가 서은씨는 개성있고 통통 튀어서 여행다니려고 일하는 것 같았어요. 나중에 말레이시아 오면 연락해요, 진심이에요.'
고객님께서 - 성함은 밝히진 못하지만 - 직접 연락처를 주셨던 날이다. 업플로 호스텔에서 오전 근무를 할 때로 기억한다. 당시에 말레이시아에서 온 단아한 어머님이 장박 투숙 중이셨고, 자주 보는 탓에 개인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던 것 같다, 아마 이야기의 시작은 에어컨 필터 청소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어머님이 아직 어린 아들과 힘들게 입국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한국 택배는 참 빠르게 오는 것 같아요! 등 해외여행부터 말레시이아의 소개까지 대화를 나눴던 날이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찾아오는 손님들 중 꽤나 많은 분들이 내가 한 번도 해외를 나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했고 고향에서 가져온 선물들을 주거나, 자신의 집으로 많은 초대를 해주셨다. 실제로 주 받은 연락처도 꽤 되지만 죄송하게도 여태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아무래도 서비스업의 특성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듣고 경험하고 또 느낄 수 있었다. 본인은 식음료 파트에서만 일을 했기 때문에 이토록 고객님들과 많은 소통을 한 적은 처음이라 가끔 당황스럽기도 했다. 커다란 체인 규모의 호텔에서 근무할 때는 늘 정해진 멘트와 매뉴얼대로 행동했으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했었기 때문에 내가 전공하고 배운 내용과는 많이 달랐지만 보기엔 외향적이지만 굉장히 또 내향적인 - 놀랍도록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 나에게 업플로 호스텔의 소통은 딱 적당했고 알맞다.
이곳에는 작고 소박한 매력이 있다. 업플로 호스텔이 큰 규모를 자랑하는 호스텔은 아니다. 그 때문인지 딱 알맞다. 앞서 말한 내용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익스트림하고 익사이팅한 무언가들을 소중함을 알아도 금세 지쳐하는 나에겐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적당함에 나는 만족을 느낀다. 또, 찾아오는 게스트들은 우리의 적당함에 충분히 만족하고 부담스러워하지도 않으며, 딱 알맞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간다.
그 공간에서 게스트들과 쉬는 날이 맞으면 같이 놀러 나가기도, 해외로 돌아간 친구 estephanie와도 오는 10월달 한강에서의 맥주 파티를 약속하며 작고 소중한 인연들을 만들어 나간다. 여담이지만, - 그녀가 귀국하기 전 선물해준 'min-jee' 라는 식물이 현재 화분갈이를 못해줘서 아파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분갈이도 알아볼 생각이다. - 또, 어쩌다 보니 그들과 SNS 친구가 되어 아직까지도 서로에게 하트와 댓글을 남겨주고 있다. 아쉽게도 비지니스 일정이 많았던 estephanie와는 그녀가 잠들기 전, 나는 퇴근하기 전 간간이 몇 분 정도의 대화와 오레오 쿠키 선물을 주고 같이 놀지 못했다. 그 아쉬움에 지금까지도 연화 - estephanie의 한국 이름, 현재 한국어를 공부 중이다 - 와 연락을 지속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싶다.
또, 생각지도 못하게 외출 '권유'를 받아 하와이에서 온 adam과 강남 hang out를 한 적도 있었다. 하와이 대학에서 단체로 써머 클래스로 학생들을 데리고 놀러 온 교수님이었다. - 모아나를 닮은 귀여운 학생이 기억나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 잠시 내가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과 '몇 시간' 동안 오디오를 끊기지 않고 얘기할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라 3초 정도 대답을 못했지만, adam의 조심스럽고 수줍은 연이은 제안에 수락하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 기준 그와의 외출은 성공적이었다. adam이 음악 앨범을 사고 싶다 해서 그가 찾는 BOL4가 누군지 10분 동안 헤맸고, 00박스에서 팔고 그가 원하는 미술 색칠 공부 제품을 찾지 못해 매대를 다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그에게 맛있는 밀크티 카페도 소개했고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하와이 교수로 일하며 겪는 애로사항도 들을 수 있었다. 태어난 자란 곳은 미국이어서 그런지 conan show와 jimmy kimmel show의 에피소드도 재밌게 얘기도 했다. 교육인 다운 자세로 침착하게 가끔 막히는 나의 영어를 이해하고 노력해준 adam에게 매우 고마웠던 날이었다. 혹여 어색하고 침묵만 흐르거나, 혹은 뚝뚝 끊기는 상태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소박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였나, 아, 상해에서 온 가족이 있었다. 나는 중국어를 할 수 없었고, 그들도 영어가 그렇게 능숙하지 않았다. 길게는 머물지 않던 가족분들이었지만, 그들이 조금 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알려주고 싶어 어떤 음식을 배달 시킬지 고민하는 가족을 보고 찾아가 아버님한테 - 유일하게 아버님과 언어가 통했다 - 영어로 천천히 글을 써가며 설명도 하고 우리 1층 설리번 카페도 소개해줬다. 그들이 떠나는 마지막 전날, 우리 업플로 호스텔의 최대 자랑인 업스퀘어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는 - 업플로 하우스 맞은편의 치킨이었다 - 가족에게 인사를 하며, 마지막 하루를 잘 보내고 잘 자라는 인사말에 아버님은 친히 핸드폰을 빌려달라 하시더니 연락처와 이름을 저장하시더니 상해로 초대해주셨다. 내가 이해한 영어로는, 상해에 도착해 공항에서 전화를 해주면 자신들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말씀이셨다. 아쉽게도 오후 근무인 탓에 그들이 떠나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짧았던 투숙 기간이 아쉬웠던 분들이었다.
나는 이렇듯 조용한 대화를 좋아한다. '조용한' 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이냐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런 대화보단, 한두명의, 많아봐야 세네명의, 서로의 눈을 보고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소박한 대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글쓰기뿐만 아니라,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는 거나 영화를 보고 서로에게 괜찮았던 연출과 불편했던 점을 토론한다던가. 진득한 취향이 묻어난 것을 소박하게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쩌다 보니, 호스텔에서 근무를 하는데 이런 글도 쓰게 됐다. 글이 좋아 여러 습작도 있었고 - 내향적인 탓에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 맥주 한잔에 한 두 시간 내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수다를 떤 적도 있으며, 카페에 앉아 서로의 그림을 공유한 적도 있었다. 나의 작고 소박한 취미 덕분에 게스트들과 좀 더 이야기할 소재도 많아졌고 가볍게 그들의 대화에 스리슬쩍 끼어들어 괜히 한마디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국 게스트들에겐 그들 문화를 더 이해할 수 있는 폭을 주었다. 업플로 호스텔이 내게 주는 경험은 항상 새롭진 않지만, 익숙하고 잔잔한 공감을 준다.
글 / 이서은
사진 / 사뚱공작소, 스텔라파운데이션
편집 / 박지빈